[코토호노] 우리가 결혼하게 된다면,
초등학교 이후로는 쭉 여자 중학교와 여자 고등학교였으니, 남학생들과 그다지 어울릴 일이 없었다. 만약 공학이었다면 강아지같은 호노카의 성격상 남자친구들이 끊이지 않았을 터임이 분명했다. 호노카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해서 대하지는 않을 것이고, 동네 유명 마스코트견처럼 모두와 어울리며 귀여움을 받다가 그중 한두명, 특별한 감정으로 발전했겠지. 사실 여자 고등학교라고 해서 아주 쑥맥들로만 채워진 것은 또 아니라서, 반에서 꼭 대여섯명 정도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방과후 방문할 케이크 가게나 액세서리 전문점만큼이나 남자친구와의 연애사와 성적인 진도는 은밀하면서도 인기있는 여고생들의 대화소재였다. 그러나 어린아이같은 호노카는 호기심으로 그런 대화 무리에 끼어들었다가도 15세 이상 관람금지 로맨스 영화 정도의 수위만 나와도 히익,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는걸 하고 다시 코토리에게로 돌아왔다. 이런 점에서는 우미만큼이나 순진한 면모가 있었다. 있지, 카노코쨩 남자친구 생겼대, 벌써 어른같지 않아? 18살 여고생이 남자친구가 생긴건 사실 전혀 특별하지도 어른같지도 않은, 그 또래에 흔하게도 있을법한 일반적인 사건임에도 호노카는 호들갑을 떨었다. 반짝이는 눈은 새로 나온 순정만화가 재밌더라 하는 흥미 이상의 관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호노카가 연애와 이성에의 아무런 기대가 없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호노카가 그런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돌아올 때마다 코토리는 웃었다. 웃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코토리쨩 저번주에도 고백받지 않았어?"
호노카가 코토리 책상 맞은편에 턱을 괴고 입을 뾰로통하니 오물댄다. 호노카는 주변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고 늘 중심에 서는 카리스마적인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그걸 자각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띄게 화사한, 그래서 주변의 남자 고등학교에서도 은근히 알아보고 흠모하는 사람이 생기는 코토리를 조금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누구에게 자랑할만한 핑크빛 러브 스토리라고는 전혀 없는 호노카에게 가끔 발신자 불명의 러브레터를 받았다던가, 어느 학교의 누구가 코토리에게 고백하러 찾아왔다더라 하는 소문이 흘러 나오는 코토리는 호기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비록 코토리가 자기 입으로 호노카에게 자랑하거나 전말을 소상히 알려주는 법은 없었고, 호노카쨩 오늘은 미안, 하면서 애매하게 웃으며 따로 하교한 다음날 이번에도 코토리가 누구에게 고백을 받고 거절했다더라, 하는 이어지는 소문이 들려올 뿐이었지만. 캐묻는 성격의 호노카는 아니어서 그냥 그러려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에는 먼저 말해주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그래도 궁금해지는 것을 아예 차단하기는 힘들었다.
"누구였어? 잘생겼어? 못생겼나? 에이~ 코토리쨩은 정말~, 인기도 많으면서 사귀진 않는다니까."
볼을 부풀리면서 맛난 사탕을 사랑방 깊숙이 숨기고 꺼내주지 않는 코토리를 원망하듯이 팔을 붕붕 휘두르는 호노카에게, 코토리는 또 배시시, 상냥하고 따뜻하고, 그렇지만 가슴이 아린 미소를 흘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대신 작게, "호노카쨩.." 하고 미소처럼 흐린 말끝을 버무렸다.
"응응? 왜, 코토리쨩?"
무언가 재미있는 후일담을 자기에게만 몰래 가르쳐줄 것인가 하는 기대로 신이 난 호노카가 얼굴을 쑥 내밀어서, 거의 코토리의 앞머리와 스칠 뻔 했다.
"호노카쨩은, 내가 남자친구 만들었으면 좋겠어?"
호노카는 뜨악한 표정으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잠시 코토리의 의중을 가늠했다. 그렇지만 호노카가 할 대답은 뻔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는가. 제일 친한 친구인걸. 제일 친한 소꿉친구가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한 페이지를 땀과 사랑과 희망과 눈물, 아니 눈물은 안되겠지만, 아무튼 그런 것들로 빼곡히 채우는 걸 왜 좋아하지 않겠어.
"응! 코토리쨩은 예쁘고 다정하고, 인기도 많으니까. 머어~찐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지, 당연히! 어정쩡한 녀석은 안돼. 엄청엄청 멋진 사람이어야 하니까!"
"그렇구나아…."
코토리는 어쩐지, 예상은 했지만 기대하지는 않았던 대답을 들어서 실망한 사람처럼 헤헤, 하고 웃었다. 물론 호노카는 그렇게 섬세한 부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늘 호노카에게 휘둘리면서 싫으면서도 좋은, 기쁘면서도 생각에 잠기는 듯한 코토리의 목소리는 여느때처럼 오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언제나 코토리가 호노카에게 느끼는 감정은 이런 부류였다. 다시 한번 상처받을 필요는 없었다.
"호노카쨩도, 나중엔 멋진 남자친구가 생기게 될거야."
지금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나중에, 아주 많이 나중에.
호노카를 많이 사랑해줄, 멋지고 상냥한, 그런 사람은 분명 언젠가 호노카의 곁에 나타나서 코토리가 있을 자리를 빼앗아 가겠지만. 그건 아직까지는 아주 나중의 일이면 좋겠다. 지금 당장은 아니었으면. 아직은, 코토리가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없으니까. 웃으면서 호노카에게 행복하라고 말해줄 수 있게 되는 그때까지는 지금 이대로 있을 수 있기를.
"그렇겠지이~. 아아, 호노카의 왕자님은 어디 숨어서 아직 나타나지 않는걸까나? 나 말이야, 결혼식은 성당에서 엄청엄청 근사하게 하고 싶어. 우리 집은 아들이 없잖아, 그래서 꼭 첫째는 아들을 낳을거야!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결혼해버리고 싶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거 아무래도 무리겠지?"
머리를 긁적이며 방학 계획표는 아무래도 지키지 못하겠다고 변명하던 어린 시절처럼, 호노카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릴 때는 계획표를 같이 채울 수 있게 도와줄게! 하고 호언장담했던 코토리지만 지금은 호노카를 도와주겠다던가, 네 꿈이 이뤄질거라는 얘기 같은 건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그대신 코토리는 한가지만은 호노카의 얘기처럼 흘러가길 바랐다.
"호노카쨩이 아들을 낳으면, 나는 딸을 낳을거야."
"그래? 코토리쨩의 아가쨩이라니, 무지무지 귀엽겠는걸~!"
호들갑스럽게 코토리의 손을 덥썩 잡는 호노카에게, 코토리는 엄숙할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호노카의 손을 제 두 손으로 단단히 포개면서.
"그러면 우리, 서로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자."
"에엣, 2대의 운명이 정해져버린거야? 난 좋아! 코토리쨩의 딸은 무조건 귀여울 게 당연하니까! 내 아들에게는 복덩이인거지, 아마 엄마에게 감사하게 될거야!"
호노카가 고양이같이 입매를 올리면서 히히, 하고 웃었다. 코토리는 어느새 얼굴에 웃음기조차 가신 표정이었다.
정말이니까. 정말로, 결혼시킬거니까.
아들과 딸이면, 정말로.
코토리의 진지함을 둥둥 띄워버릴 요량으로, 호노카가 다시 한 번 불쑥 얼굴을 내밀어 코토리와 코를 부볐다.
"결혼하자,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