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22 ; 전쟁,고양이,여왕
설레임 / 2010. 2. 24. 07:50
교실의 분위기는 전쟁터였다. 클래스메이트들은 평소에 조용하기 짝이 없던 시진의 존재감을 이기회에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시도와 대치하고 있는 시진의 싸늘한 위압감은 교탁 앞에 선 선생님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저기.. 무슨 일 있었니? 아직 교사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여선생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반장인 시도가 생긋 웃으며 아뇨 아무 일도 없었어요 라고 대답하자 곧 기가 죽어 수업을 시작했다.
따분한 시간이었다. 시진은 칠판을 노려보고 있던 - 사실 교탁 바로 앞에 앉은 시도를 노려보고 있던 - 시선을 돌려 창밖을 쳐다본다. 이제 만연한 봄이다. 넓은 운동장을 넘으면 초록색이라기엔 너무 옅은 연두색의 산그늘이 펼쳐져있다.
생각해보면 싸움의 발단은 별게 아니었다. 시진이 일요일 오후 산책 나간 공원에서 누가 버린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고, 불쌍한 마음에 집으로 데려왔었다.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시도가 안된다고 단언한 것은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시진이애초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진은 괜한 오기로 시도에게 반항하고, 고양이에게 '여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는 시진이 혼자 돌보기엔 호기심도 왕성했고 무엇보다 너무 연약했다. 시진의 방에서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한 지 이틀만에 고양이는 고열이 났다. 얼음처럼 굳어버린 시진대신에 시도가 동물병원까지 여왕을 데리고 뛰어갔고, 동물병원에서 알맞은 입양처를 찾아달라고 부탁한 뒤 시도는 홀로 돌아왔다.
내 잘못이야. 하루를 꼬박 화난 얼굴로 시도의 사과도 무시하고 있던 시진이 새파란 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구름도 없다. 수업이 끝나면 사과해야겠다.